나는 우매하여 그럴 줄을 모르니 짧을短 생각想 (Piece)

모든 걸 다시, 원점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신기루의 샘 속에서 물 길어다 동료들과 같이 시원스레 목욕하는 일이 열번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또 어물전을 묘사해 놓은 그림 속에서 한 마리 연어를 꺼내다 마누라와 함께 구워 먹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우매하여 그럴 줄을 모르니, 그러므로 내가 우직한 채로 소가 되고 부지런하여 벌이 되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놓고, 그것 위에서 우직히 투쟁하며, 그것 위에서 부지런히 명상하고, 근면과 우직을 다하여 정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자신에게 자꾸 타일러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꾀 있는 사람은, 계란을 그저 한 번, 눈깜박할 동안만 소매 끝에다 넣었다 꺼내도 장닭을 품어내지만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은, 하루 세 번 군불을 지핀 아랫목에 품고 누워 식음을 전폐하기를 스무 하루나 한다고 하더라도, 잘하면 병아리나 품어내거나, 그렇지도 않으면 곯려버리고 말 것이었다. 그러므로 꾀는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가 바랄 바는 아닌 것이었다.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p.105)


참 재주가 좋고 꾀가 많은 사람들이 있다. 50을 갖고도 100을 보여주는 그들은, 설령 그들이나처럼 50이 있다고 쳐도 아무리 기를 써도 그럭저럭 제값도 제대로 쳐서 받지 못하는 나로서는 언제나 부러운 사람들이다. 꾀는 그들의 것. 그저, 우직한 채로 소가 되어, 소 발걸음 흉내나 내면서 근면과 우직을 다하여 정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자꾸 타일러줄 뿐이다. 그러다가 혹시나 소 뒷걸음치다 쥐나 밟듯이 짬짬이 호랑이 눈이나 설핏 가졌으면 할 따름.

덧글

  • happyalo 2005/02/01 08:05 # 답글

    제게도 딱 해당되는 얘기네요.
  • 2005/02/01 20:3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5/02/04 02:47 # 답글

    happyalo: 아... 역시, 어물전을 묘사해 놓은 그림 속에서 한 마리 연어를 꺼내다 마누라와 함께 구워드시는 일은 죽었다 깨도 못하시겠지요?

    익명님: 물론입니다. 힘내세요!
  • esaint 2005/02/06 10:56 # 삭제 답글

    최근 나의 고민과 물려있는 내용들이 있네요. 펌글로 퍼 가도 되겠죠... 출처는 그저 아는 사람 블로그로 해 두겠습니다. 혹시 연결 필요하시면.. 알려주시고. 오늘 서울을 떠납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 거리를 넘어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디뎌봅니다. 물론, 내 머리속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어디보다는 그저 단독으로 "이집트"로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다녀와서 생각을 갈무리할 수 있다면, 적어보겠습니다.
    요즘은 생각을 글로 적어내리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 deulpul 2005/02/11 04:00 # 답글

    이번엔 그쪽인가요? 주말쯤이면 돌아오실텐데, 벌써부터 여정이며 느낌이며 궁금합니다. 무슨 새로운 각오를 만들어 오셨나 궁금하기도 하구요. 글이나 삶이나 "어깨 힘 빼고..." <-- 이거 항상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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