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서 찬밥 대접받는 모병관들 미국美 나라國 (USA)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 을 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미국은 한국 같은 국민 개병제가 아니라, 원하는 사람만 군에 자원하여 입대하는 모병제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는 젊은이 일반을 대상으로 징집 영장을 날리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원병 제도입니다. 따라서 군대에 가겠다고 나서는 젊은이가 있어야 계속 신병을 뽑아 군대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행동이 한창 자유로울 20살 안팎의 젊은이들에게 딱딱한 규율과 엄격한 명령 체계 속의 생활이 매력적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미국 국방부는 군대에 가겠다고 나서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혜택을 줍니다. 거꾸로 말하면, 많은 혜택을 미끼로 하여 젊은이들을 꼬드깁니다.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물론 돈이죠. 미군 당국은 고등학교 졸업반이나 대학 저학년 학생들을 목표로 하여, 대학 학비를 군에서 대줄테니 돈 걱정 말고 마음껏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고무합니다. 이 말이 먹히는 것은 미국의 대학 학비가 대충 천문학적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군대로부터 돈을 받은 대학생들은 학교 생활 중에도 간간이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하고, 졸업 후에는 일정한 기간을 군에서 복무해야 합니다. 졸업하고 나서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지금처럼 전쟁중이고 현지 병력이 모자랄 때는 대학생 처지에서도 학교를 휴학하고 예비 병력으로 소집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같이 군대가 금전적 혜택을 미끼로 젊은 '장정' 을 찾아나서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육해공 및 해병대 각군은 마치 기업체에서 그렇듯 홍보단을 조직하여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보는 잡지나 대학가에서 발간되는 신문에는 군대 광고가 수시로 등장합니다. 또 비싼 돈을 들여 텔레비전 이미지 광고도 자주 내보냅니다. 이런 광고들의 컨셉은 1) 조국을 수호하는 주역, 2) 자유를 지키는 전사, 3) 첨단 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유능한 전문가, 4) 전우들과의 진정한 우정, 5) 험한 훈련 속에 스스로를 극복한 용사, 6) 따분한 시골 마을을 벗어나 전세계를 누비는 흥분 같은 것들로 짜여져 있습니다. 언젠가는 텔레비전에서 3D 애니메이션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헬기를 조종하는 광고가 나왔는데, 저는 새로 나온 플레이스테이션 타이틀을 광고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같은 상황이라, 대학가 같은 일선에서 직접 젊은이들을 만나 군대에 올 것을 권유하는 모병관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전쟁중이라 일주일에 병사 십수명이 싸늘한 시체로 고국으로 돌아오는 상황에서, 군대 자원율이 뚝뚝 떨어져가는 판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미군 당국은 전국적으로 모병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 미국 대학가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모병 사무소나 모병관들의 활동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가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20일, 미국 워싱턴주의 한 대학에서는 학교 캠퍼스 안에서 모병 활동을 벌이던 모병관들이 학생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글자 그대로 학교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학생들은 이들에게 병과 신문 뭉치 따위를 던지며 캠퍼스 밖으로 내몰았다고 합니다. 시위를 할 때도 기껏해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정도가 대부분인 미국 대학 사회에서 이같은 직접적 접촉은 매우 보기 드문 일입니다.

이 대학뿐 아니라 미국 이곳저곳에서 모병관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곳 근처의 한 모병 사무실 역시 1월에 대학생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반전 운동 단체 등에 속한 대학생 수십명이 모병 사무실을 급습하여 점거하고 몇 시간 동안 구호를 외치며 점령한 것이죠. 이들은 출동한 경찰관들에 체포되어 무단 침입 및 업무 방해 혐의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지난 주에는 대학 학생회관에서 열린 취업 설명회의 한쪽 부스를 차지하고 있던 해군 모병관들이 곤욕을 치렀습니다. 설명회가 시작된 지 한시간 만에 30여 명의 대학생들이 해군 부스 앞에 모여들어 구호를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하고 한 여학생이 체포되고 나서야 사태가 가라앉았습니다.

대학생들이 미군 당국의 학내 모병 활동을 반대하며 물리력까지 동원해 막으려는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무어도 말했듯이, 학비 같은 금전적 보상 탓에 저소득층 젊은이들만이 군에 소집되어 전쟁의 희생양이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대학 학비를 댈 능력이 없는 가난한 학생들이 목숨을 볼모로 잡히고 대학 교육을 받는 꼴이라는 것이지요. 결국 미군 충원은, 겉으로는 모병제의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가난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징병 (poverty draft) 이라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미군 당국의 모병 활동이 성적 차별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이 점은 아래 관련 소송 부분에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은 모병관들의 학내 활동에 반대하고 있지만, 정작 대학 당국은 모병관들이 학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면서 모병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활동에 재정적 족쇄를 채워둔 '솔로몬 개정안' (Solomon Amendment) 때문입니다. 1990년대 중반에 공화당의 솔로몬 하원의원이 발의해 제정된 이 법안은, 어떤 대학이든지 학내 모병 활동이나 ROTC를 금지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을 끊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군인 모집을 못하게 하면 정부 지원금을 모두 잘라버리겠다는 법안입니다. 대학들을 비롯한 미국의 고등교육 기관들이 정부 지원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아주 단단한 족쇄를 채워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두어 해 전부터, 솔로몬 개정안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소송이 예일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등의 학생과 법학 교수들에 의해서 잇달아 제기되었습니다 (SAME & Yale Outlaws 대 Rumsfeld, Burt 대 Rumsfeld, Burbank 대 Rumsfeld, FAIR et al. 대 Rumsfeld 등). 럼스펠드가 피고인으로 된 것은 솔로몬 개정안에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끊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이 국방장관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일대 법대의 학생 및 교수 그룹인 SAME 이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상대로 솔로몬 개정안의 위헌 소송을 낸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예일대 로스쿨은 전통적으로 인종, 피부색, 종교, 민족, 신념, 성적 취향 등 어떤 이유로도 구성원들을 차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학교가 취업 설명회를 열었을 때, 이에 참가한 군 당국은 명백히 동성애자들을 배제하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스쿨은 자체의 설립 취지는 물론, 헌법의 평등 정신과도 맞지 않는 군 당국을 취업 설명회에서 배제하려 했으나, 그럴 경우 솔로몬 개정안 때문에 예일대가 받고 있는 연 3억달러를 삭감당하게 되는 처지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솔로몬 개정안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소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2003년 9월에 FAIR (Forum for Academic and Institutional Rights) 를 비롯해, 보스톤 칼리지, 뉴욕대, 조지타운대를 비롯한 많은 학교의 쟁쟁한 법대 교수와 학생 연합 단체들이 미국 국방부장관, 교육부장관, 노동부장관, 보건부장관, 교통부장관, 국토안보부장관 등을 모조리 대상으로 하여 제기한 소송 (FAIR 등 대 Rumsfeld) 일 것입니다. 이 소송은 예일대 케이스와 비슷한 차별 반대의 맥락에, 군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자금줄을 잘라버리므로 표현의 자유 (First Amendment) 침해라는 항목을 첨가했습니다.

대학 사회와 시민운동단체, 정부 기관들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벌어진 재판에서, FAIR 는 1심에서 패했으나, 2004년 11월29일 필라델피아에서 벌어진 제3 연방 순회재판에서 3인 판사는 1심을 뒤집고 FAIR 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제 이 소송은 연방대법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또 얼마 전인 2월7일, SAME 소송과는 별개로 예일대 교수진이 제기한 비슷한 소송에서 1심 판사는 솔로몬 개정안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이 난 뒤, 클린턴 때 미국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냈던 한국계 교수로 지금 예일대 법대 학장을 하고 있는 해롤드 홍주 고 (Harold Hongju Koh) 가 낸 성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재판 결과에 더할 수 없이 만족해한다며, 올 봄부터 예일대 법대에서 비차별 정책을 예외없이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것임을 군 당국에 천명한다는, 최후통첩문 혹은 선전 포고문 비슷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신병을 충원해야 하는 부시 정부는 이같은 소송 사태에 흔들리지 않으며, 미국 의회도 지난 2월2일 솔로몬 개정안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정부와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법률 단체에서도 이 법안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며, 1월에 군 모병관들을 쫓아낸 워싱턴주의 학교에 대해 당장 지원을 끊어야 한다고 럼스펠드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논란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 그날까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사족] 특권층 아버지를 두지 않은 신체 건강한 남성들은 예외없이 군대를 가야 하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논란이니, 한국이 행복한 것일까요. 아니면, 군대 가봐야 대학 학비는커녕, 많이 올라서 몇 만원 월급에 만족해야 하는 한국이 불행한 것일까요. 미국은 신병 모집에 동성애자들을 배제하는 데 대해 거국적으로 반발하는데, 신병 모집에 원천적이고 명시적으로 여성을 배제하는 병역법에 대해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는 한국은 평등에 관한 한 까마득한 후진국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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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올빼미 2005/02/21 15:15 # 삭제 답글

    미국은 모병관들이 여성에게도 입대를 권유하나요?
  • deulpul 2005/02/21 18:10 # 답글

    물론입니다. 자기 완결 조직인 군의 특수성 때문에,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직종의 일을 할 신병들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전투병뿐 아니라 기술자, 음악가, 과학자, 의료진, 종교인, 법률가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같은 인력을 충원하는 모병에 남녀 차별은 없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뭐, 인력 충원 계획에 따른 남녀 할당 같은 건 있겠지요. 마이클 무어 영화에 나오는, 플린트 같은 폐허 도시에서 흑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신병 모집하러 다니는 장면만 생각하지 마세요. 모병관들은 미국 최고의 법대에도 나가고 의대에도 나가서 군이 필요로 하는 전문가들을 충원합니다.
  • 와니 2005/02/21 19:16 # 삭제 답글

    누구나 군대가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선 군인이라고 하면 굉장히 선입견이 있는게 사실이죠..
  • happyalo 2005/02/21 19:49 # 답글

    역시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전쟁이군요. 군인이 국토방위에만 힘쓰는 수준이라면 학비를 받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게 그나마 저소득층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텐데, 현실은 그것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으니...
  • 불가사리 2005/02/22 01:05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사족은 말그대로 정말 사족이네요.
  • 혜진 2005/02/22 04:54 # 답글

    씁쓸하군요. 한국은 예비군이라는 혹도 있는데 말이죠.
  • win85 2005/02/22 07:26 # 삭제 답글

    뭐,, 사실 대학에서는 별로 모집 안하죠. 자기가 알아서 등록금 낼 수있는 경제력이라면 군대갈 이유 별로 없으니.. 대부분 병력이 충원되는 곳은 대도시 다운타운의 흑인 90%이상 고등학교들..;
  • A-Typical 2005/02/22 09:50 # 답글

    군인 출신을 선호하는 미국 기업도 제법 있습니다. 장교가 아닌 병 출신에게도 드러내놓고 군대 나와서 선호한다고 하더군요.
  • deulpul 2005/02/22 16:14 # 답글

    와니: 경제적 위치가 낮아서 그런가요? 아무래도 희귀해서 그런 게 아닐까...

    happyalo: 네- 역시 애덜 모아서 딴짓하려는 의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사람만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지구 어딘가에서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 때는 거의 없다고 하니 말여요.

    불가사리: 잘라 버릴까요?

    혜진: 그 혹 많이 작아졌죠?

    win85: 대학 등록금이 입학할 때 한번 푹 내고 마는 게 아니라 학기초마다 부과되니 모병 조건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위에 말씀드린대로 전문 인력에 대한 필요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흑인 90% 이상 고교... 오... 미군의 신병 충원 당국이 그런 내부 기준 같은 걸 갖고 있나요? 혹은 그같은 통계라도 있으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충 때려잡는 숫자는 언제나 위험)

    A-Typical: 사원을 모집할 때의 기준은 역시 기업의 경영 이념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죠.
  • 강직 2005/03/07 03:10 # 답글

    군가산점 위헌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판결에 관련된 높으신 분들 자신이나 그 자녀분들이 군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평등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히 불평등하게 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 강인규 2005/03/08 09:13 # 삭제 답글

    저는 군가산점 위헌판결이 정당했다고 믿는 편입니다. 군가산점제도는 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보다는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군가산점은 정부로서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생색을 내는 '손 안대고 코푸는' 정책이기도 했지요. 때문에 저는 공무원시험등의 경쟁상황에서 추가점수를 주는 '상대적 혜택'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는 '절대적' 혜택, 예컨대 교육비 지원이나 세제혜택 등의 보상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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