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조 저널리즘' 의 대부, 자살하다 중매媒 몸體 (Media)

"곤조" (根性, こんじょう) 란 일본말로 본성, 근성을 의미합니다. 성깔, 심보 같은 뜻으로도 쓰이는데, 주위에서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한 길로 매진하는 냄새를 풍기는 말입니다. 나쁜 뜻으로는 꼴통 같은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저널리즘에서도 쓰인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른바 "곤조 저널리즘" (gonzo journalism) 입니다.1

흔히 저널리즘의 생명은 사실 (fact) 보도에 있으며, 저널리스트의 소명은 사실에 대한 영원한 헌신과 추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취재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저널리스트의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됩니다. 그러나 곤조 저널리즘은 이같은 주류 취재 태도의 덕목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립니다. 취재 대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보도하기 위해서는 직접 취재 대상이 되어 함께 부대끼며 생활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범법을 저지르게 되어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참여 관찰 (participant observation) 의 극단적 강조라고나 할 이 말을 처음 만들고 스스로를 곤조 저널리스트라고 이름 붙인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헌터 S 톰슨 (Hunter S. Thompson, 67, 윗 사진) 이 어제 (2월20일) 콜로라도의 자기 집에서 권총 자살로 숨졌습니다.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대표작은 1971년에 발표한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공포와 혐오>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입니다. 여기서 톰슨은 스스로 마약과 술에 찌든 괴팍한 주인공이 되어 기존 권위에 도전하며 미국의 문화와 현실을 신랄하게 비꼬았습니다. 기성 언론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객관주의를 헌신짝 버리듯 던져버리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주인공이 되어서 써낸 매우 반항적인 스타일의 기사는 급속히 독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독자들은 톰슨의 기사를 통해, 기존의 객관적인 기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힘과 재미를 맛보았습니다.

이러한 톰슨의 시도는 새로운 저널리즘의 창출로 인정받았으며, 그 자신은 이를 곤조 저널리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저널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필자 자신이 기사의 주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취재 대상인 범법자들과 함께 부대끼고 생활하면서 기사를 쓰자니, 마약 같은 것은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대 조건들이었습니다. 오토바이 갱을 다룬 <지옥의 천사들> (Hell's Angels) 을 쓸 때, 톰슨은 거의 매일 그들과 함께 술마시고 마약을 했습니다. 누군가 이를 비판할 때, 그가 코웃음을 치며 내세운 말은, 지금은 명언이 된 다음과 같은 슬로건이었습니다: "내가 괴팍하게 행동하면 괴팍한 사람들이 내 편이 된다" (When the going gets weird, the weird turn pro).

그는 2003년 AP 와 가진 인터뷰에서, 비슷한 집필 철학을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동화를 제외하면, 픽션이란 철저히 현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픽션을 쓰기 위해서 당신은 실제 인생을 관찰하고 배워야 합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쓰고자 한다면 먼저 그 글감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가 얼마나 제멋대로의 생활을 했던지, 닉슨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미국인의 성격 중 어둡고 팔팔하며 대책없이 폭력적인 부분" 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톰슨은 최전성기였던 70년대에, 당시 팽배했던 저항 문화 속에서 비주류 문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욕설이 수시로 등장하는 무법 저널리즘" 은 70년대 이후 계속 쓴 정치 칼럼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롤링 스톤> 같은 여러 신문과 잡지에 실린 칼럼을 모은 그의 책들은 제목만 봐도 그가 얼마나 신랄하게 미국적 삶의 타락과 부조리를 비판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돼지들의 세대> (Generation of Swine), <불운한 자들의 노래> (Songs of the Doomed), <위대한 상어 사냥> (The Great Shark Hunt), <지옥의 천사들> (Hell's Angels), <섹스보다 좋은> (Better than Sex), <오만의 고속도로> (The Proud Highway) 등입니다. 그가 가장 최근에 한 작업은 <어이, 촌뜨기!: 피튀기는 스포츠, 부시 독트린, 그리고 멍청함의 나선형 확대> (Hey Rube: Blood Sport, the Bush Doctrine, and the Downward Spiral of Dumbness) 라는 긴 제목의 책입니다. 톰슨의 몇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영화가 되었거나 제작되고 있으며, 그 자신이 유명 만화 Doonesbury 의 주인공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Uncle Duke, 왼쪽 그림).

첫 작품 <지옥의 천사들> 에서 오토바이 갱을 취재한 이후 톰슨은 골수 오토바이 팬이 되었습니다. 또 총 쏘는 것을 광적으로 좋아했으며, 스미스 웨손의 44구경 매그넘 권총을 끔찍히 사랑했습니다. 악명 높은 미국총기협회 (NRA) 정회원이기도 합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콜로라도 산 속의 야전사령부 같은 집에 앉아서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향해 신랄한 독설의 방아쇠를 당기던 기괴하고 괴팍한 저널리스트 톰슨은 결국 총구를 자기 머리로 돌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주 1. Dictionary.com 을 통해 gonzo 를 찾아보니,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에서 "과장되고 매우 주관적인 저널리즘 스타일; 특이한, 색다른" 정도의 뜻을 가진 속어로 나와 있습니다. 어원으로 이태리어, 스페인어, 독일어 같은 유럽어만 이리저리 추정하고 있는데, 사전 편찬자가 일본어에 대한 지식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 기사: AP, 로이터, 기타
사진 출처: http://www.gonzo.org/pics/index.html
만화 출처: http://www.doonesbury.com/strip/thecast/duk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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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곤조 저널리즘의 헌터 탐슨에 대한 글 둘 | yokim.net 2015-04-27 06:19:33 #

    ... 곤조 저널리즘에 참여하는 셈이다 (나의 해석: 결국 세상은 모두 못이다) 들풀. &#8220;곤조 저널리즘&#8221; 의 대부, 자살하다 http://deulpul.egloos.com/912090/ 남들이 뭐라 하든 콜로라도 산 속의 야전사령부 같은 집에 앉아서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향해 신랄한 독설의 방아쇠를 당기던 기괴 ... more

덧글

  • 지아쿨 2005/02/22 20:25 # 답글

    방금 배우 이은주 씨의 자살소식을 듣고 왔는데, 연이어 톰슨의 죽음까지 접하게 되자 머릿속에서 윙윙 바람소리가 나네요. 그냥 좀 멍합니다. 하지만 왠지 톰슨답다는 생각도 드네요.^^;;
    을유년 새해를 병원 영안실에서 맞아서 그런 걸까요... 이상하게 올해는 죽음과 관련된 소식을 너무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으로요. 지금이 세기말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걸까요?
  • happyalo 2005/02/22 22:31 # 답글

    지아쿨님도 언급하셨지만 연이은 자살 소식이군요.
    어제, 오늘 제 분위기도 이상한데 에효...
    그나저나 곤조에 대한 어원을 저기에 알려 줄 방법은 없을까요?
  • 2005/02/25 10:3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5/03/01 13:52 # 답글

    지아쿨: 의도하지 않게 우울한 소식을 전해드려 죄송하네요. 그러나 이은주씨 경우와는 달리, 그의 죽음 자체보다는 그가 살면서 남긴 것들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특이한 가치관과 삶의 소유자여서 말여요...

    happyalo: 아아, happyalo님께도 죄송합니다. 우연히 그렇게 되었단 말입니다! 하긴, 이걸 써놓고 다른 포스팅을 게을리하는 바람에 계속 블로그 대문에 떠있는 게 저 보기에도 좀 그랬답니다...

    익명님: 이모님 덕분에 저희가 정말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번에 불쑥 들렀을 때도 너무나 잘 대해주셨는데 또 폐를 끼치란 말씀인가요? 하하... 이모님이, 일정이 바쁘시더라도 혹시 그쪽에 들러 가시지는 않을까 했는데, 역시 그렇게 움직이기가 쉽지 않으셨겠어요. 멀리 사시면서 자주 만나시지 못한다는 것을 잠깐 잊고 있었습니다. 형제란 게 그런 모양입니다. 건강하시고 아드님도 힘차게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 아거 2005/03/04 15:16 # 삭제 답글

    물론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곤조는 일본어의 근성이지만
    gonzo가 일본말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정확한 근거는 찾을수
    없습니다.
    물론 우연찮게 이 저널리즘에서 표방하는 내용이 "근성"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죠.
    헌터는 팬 레터를 보다가 이 단어를 떠올렸다고 했는데
    그 팬 레터를 보지 않는 이상, 일본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추측해서 기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 deulpul 2005/03/05 12:48 # 답글

    독립된 글로 답을 올렸습니다.
  • a77ila 2005/03/05 13:19 # 삭제 답글

    Wikipedia에 보면 곤조는 일본말이 아니네요... (http://en.wikipedia.org/wiki/Gonzo)
    'Gonzo' is South Boston Irish slang describing the last man standing after a drinking marathon.
  • deulpul 2005/03/06 00:53 # 답글

    이미 다른 글에 밝혀놨습니다. 이렇게 중복해서 올리실 것까지야.
  • 김용호 2005/03/21 10:53 # 삭제 답글

    들풀님, 최근 ozzys + Genesis 님과의 경우에도 보았듯이 혹시 제 글을 본 사람이 ( http://b.yokim.net/486/ ) 들풀님에 글에 테러를 가한 것이 아닐까요? 제 글에서 들어나듯이 전 들풀님의 톰슨에 대한 평가를 탐탁치 않게 여기니까 말입니까. -.-
  • 김용호 2005/03/21 10:58 # 삭제 답글

    근데 이제 보니 익명 답글도 아니고 koreanjurist 님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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