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누군가는 반격한다 [1] 미국美 나라國 (USA)

미국 사회 일각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와드 처칠의 에세이<누군가는 반격한다: 보복의 정의에 대하여> (Some People Push Back: On the Justice of Roosting Chickens) 를 이제야 올립니다. 에세이의 부분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전체를 다 파악한 맥락이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글 전체를 대충 우리말로 옮길 때까지 기다리느라 그랬습니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 차례로 싣습니다. 회색으로 되어 있는 괄호는 모두 역주입니다.

처칠의 글을 보자니 과연 미국인이 쓴 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일반 미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신랄하고 따끔한 내용입니다.

첫 부분에서 처칠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1) 미국이 걸프전 이래 이라크에 가한 각종 공격과 봉쇄는 수많은 무고한 인명 살상을 불러온 범죄행위다. 2) 미국 국민은 자기 정부의 만행을 용인함으로써, 나치 때 독일 국민과 같은 공범자가 되었다. 3) 결국 9-11 공격을 초래한 것은 미국 자신이다. 4) 9-11 공격팀은 미치광이 광신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매우 이성적이고 결단력 있는 군인들이다. 5) 미치광이이자 비겁자들은 그들이 아니라 미국의 지도자와 국민이다.






누군가는 반격한다: 보복의 정의에 대하여

1963년 11월, 기자들이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 말콤 엑스에게 존 F 케네디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자기가 뿌린 씨를 자기가 거두는 꼴이지요."

2001년 9월11일 오전, 그동안 미국이 뿌린 씨앗들이, 50만에 이르는 이라크 어린이들의 죽음의 저주와 함께,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쌍동이 빌딩과 미국 국방부 건물 펜타곤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미국이 뿌린 씨앗은 무엇이었나.

이라크에서 숨진 12살 이하의 어린이 50만명의 희생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이들의 죽음은 1991년에 미국이 이 나라의 상하수도 시설을 비롯한 사회 기초 시설을 겨냥해 폭격을 퍼부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 시설들은 이라크 민간인들의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시설들이었다.

이러한 공습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문명화된 행동의 기준을 모조리 위배하는 것임은 물론이고, 수많은 국제법을 위반함으로써 인류에 대한 가장 무거운 범죄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공습 그 자체가 끔찍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 미국이 가한 봉쇄 정책으로 인해 십여 년 동안 이라크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따금씩의 대규모 군사 작전이나 주기적인 공습으로 뒷받침된 이 봉쇄 정책 때문에 이라크인들은 식량이나 의약품을 비롯한 생필품을 외부로부터 수입할 수 없었으며, 갓난아이들조차 제대로 먹히고 입힐 수 없었다.

이라크 인구는 약 1천8백만이다. 지금까지의 어린이 희생자 50만 명은 그 나이 또래 인구의 25%가 되는 셈이다. 나머지 사람들도 회복할 수 없을만큼 심각한 육체적 쇠락과 정신적 고통을 동시에 겪었고, 또 지금도 겪고 있다. 미국의 침략과 봉쇄의 결과로, 이라크인들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압살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러한 대량 학살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백악관에 앉아 자유를 사랑한다고 떠벌이는 미국의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아버지로, 아들에 못지 않게 자유를 사랑하는 아버지 조지 부시는 언젠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밝힌 적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한다면 한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소."

이러한 읊조림은 역시 자기들의 대통령만큼 '자유를 사랑하는' 도처의 미국인들로부터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아버지 부시가 어떻게 자신의 메세지를 미국 대중들에게 전달했는가 하는 것은 수수께끼도 아니다. 이라크 폭격 장면이 24시간 내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고, 그 시청률이 유례없이 높았음을 기억해보라.

이러한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는 이라크 희생자들을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낙타를 타고 다니는 적' 으로 덧칠한 뒤, 이라크로부터 들려 오는 살상 소식에 환호하고 기뻐했었다. (걸프전 막바지에) 퇴각하는 이라크군을 전멸시킨 이른바 '죽음의 고속도로' 에 대한 승전 보도를 기억하는가? 나중에 밝혀진 진상에 따르면, 미국 공군기로부터 발사된 강력한 화기로 단 하루만에 싹쓸이된 이들 수많은 이라크 병사들은 당시 거의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고향으로 철수하고 있던 이라크 민간 징집병들이었다.

이것은 나치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하던 초기 몇달 동안 저지른 짓에 비견할 만한 일들이었다. 선량한 독일인들 역시 이 학살에 기뻐하고 환호했다. 실제로 히틀러는 1943년에 스탈린그라드에서 패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선량한 국민' 들로부터 어떠한 심각한 비판도 받지 않았다.

반 세기 전에 독일 국민이 자기들의 지도자와 군대에게 대량 학살을 허용하거나 심지어 조장함으로써 저지른 집단적 죄를, 이제 경건한 미국인들이 다시 범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국은 독일 국민 전체가 학살에 대한 집단적 책임이 있다고 자기 입으로 언제나 강조해오지 않았던가.

선량한 독일 국민에게 집단적 책임이 있었다면, 오늘날 선량한 미국인 역시 집단적 책임을 안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독일의 그것처럼 정말 끔찍한 것이었다. 이라크 어린이들의 희생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미국 대통령들이 전세계에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독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밀어부친 '신세계 질서' 의 국제 정책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해, 인도주의에 입각해 이라크를 원조하려던 UN의 고위 책임자가 두 명이나 미국의 정책에 항의하는 표시로 직위를 사임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중 한 명인 전 UN 부사무총장 데니스 할러데이는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의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체계적인 집단 학살 프로그램" 이라고 공공연하게 비난해왔다. 그의 주장은 1998년 가을에 <뉴욕 타임스> 를 비롯한 여러 신문에 크게 실렸으므로, 미국인들이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 직후, 당시 국무장관이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Meet the Press" 에 나와 할라데이의 주장에 대한 답변을 요구받고, "이것은 미국의 목적이 이루어졌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대가" 라고 말함으로써, 할라데이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집단적 범죄자들의 정치

그러나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의 폭로에 대해 미국인들은 늘어진 하품으로 응답했다. 수십만 이라크 어린이가 겪는 살상이나 비극보다 그들이 더 급하게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예컨대 주말 축구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나오게 되는지, 인기 가수가 어떤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는지 따위가 그것이었다. 또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본다면, 젊은 미국인들은 '우리 (미국) 어린이' 들을 보호하기 위해 흡연과 싸우는 금연 캠페인 같은 것에 몰두하였을 뿐, '남의 어린이' 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물론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매우 미약하나마 존재했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조차,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도덕적 존재가 되었다고 스스로 만족했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만족해 하는 동안 이라크의 다섯 살 어린이는 어둠 속에서 두려운 눈으로 부들부들 떨며 울부짖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형태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종류의 이른바 '저항' 이란, 체제에 의해 강요되는 이른바 '도덕적 원칙' 을 뛰어넘지 못함으로써, 미국 제국주의(Pax Americana)의 광풍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 고작해야 플래카드를 흔드는 것 이상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들의 원칙은 너무나 강고해서, 이제 이 '평화주의자' 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민족의 비극에서 돈을 챙기는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경찰 노릇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인간보다 재화를 앞세우거나 적어도 둘을 동치시키는 것은 이미 미국 기업의 중역실에서만 강요되는 가치가 아니라 미국인 일반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가치관이다. 그리고 이같은 타락한 감정을 감춘 채 나타나는 거짓 도덕성은, 그것이 석유 대기업 스탠더드오일의 경영자 입에서 나오는 것이든 (WTO 회의가 열리는) 시애틀에서 이에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자들 때문에 장사에 약간 지장이 생긴다고 화내는 이른바 '평화주의자' 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든, 구역질나도록 닮은 꼴이다.

이러한 상황인지라, 중동 지역을 비롯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정부에 반대한다고 말로만 떠벌이는 미국의 평화주의자들이 수호하겠다는 바로 그 평화를 다른 곳이 아니라 미국의 본토, 미국의 거리에서 찾으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러한 사태의 흐름은 허영과 자만에서 비롯된 망상에 사로잡혀 눈먼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미국의 무차별 폭격을 받고 있는 지역에서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명백한 함축이기도 하다.

결국, 이라크에서 대량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히 인정되었다는 점과, 그런데도 이를 중지시키기 위해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한 미국인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 바로, 아랍의 전투 병력이 비행기를 징발하여 사용한 9-11과 같은 방식으로 미국 땅으로 침투하기 시작한 이유이다.

"테러리스트" 는 누구인가

9-11 작전을 수행해 미국을 공격한 사람들에 대하여 분명히 알아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9-11 작전을 성공시킨 뒤 아들 부시와 사기업인 언론 매체가 쏟아낸 가치 없는 헛소리의 홍수 때문에 거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우선 그들은 미국을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며, '21세기 최초의 전쟁 행위' 를 감행한 것도 아니다.

이들이 전투원으로서 수행하고 있는 전쟁은, 기실 서구 기독교 사회가 동방 이슬람 사회에 대해 1천여 년 전부터 벌여온 십자군 전쟁과 그 맥이 닿아 있다. 지금은 미국이 자랑스럽게 대표역을 맡아 수행하고 있지만 말이다. 또는 조금 더 현대로 눈을 옮기자면, 이 전쟁은 1960년대에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무단 점거를 배후 지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1990년에 아버지 부시가 '사막의 방패' 작전을 명령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으며, 혹은 그 두 시점 사이의 아무 때에서부터나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떤 시점을 잡든 관계없이, 9월11일에 WTC와 펜타곤을 공격한 전투 대원들의 행위를 전쟁 행위라 본다면, 이라크 영공을 제집처럼 날아들던 미국의 행위 하나하나 역시 똑같은 전쟁 행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21세기 최초의 전쟁 행위는 바로 21세기의 첫날에, 당시 미군 최고 명령권자인 클린턴의 지휘를 받는 미국 항공기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다.

9-11 공격을 수행한 사람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들은 미국이 자기 국민에게 가한 행위에 대해 이제야 비로소 부분적이나마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이 공격을 벌이기까지 그토록 오랜 기간을 참고 기다려왔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동안 놀라운 인내와 자제력을 발휘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들은 물론 '무고한 민간인을 겨냥하는' 방침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다. 우선, 전투원들이 공격한 미 국방성 건물 펜타곤과 그 안의 사람들은 분명한 군사적 목표물이다. 미국 정부나 언론이 펜타곤 피격과 그 희생자에 대해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은 것은 민간인 희생만을 강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WTC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 한번 솔직하게 말해보자. 그들은 일종의 민간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무고한가? 아무런 죄가 없는가? 웃기지 마라. 그들은 미국이라는 국제 금융 제국의 최심장부에서 활동하던 기술관료 집단이다. 미국의 금융 산업은 미국의 국익을 창출하는 강력한 엔진이며, 미국의 군사 정책은 항상 이 금융 산업에 종속되어 그 수족이 되어 왔다. WTC 안의 기술관료들은 이같은 사실을 분명히 알고도 의도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던 사람들이다. ‘몰랐다’ 는 말(ignorance) 은 이 상대적으로 잘 교육받은 엘리트들에게는 변명조차 되지 못한다. 무지를 뜻하는 ignorance 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묵살하는 의미인 ignore 에서 왔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만일 그들 중 누군가가, 자기가 WTC 안에서 수행하는 일이 어떠한 결과를 빚고 있는지에 대해 몰랐다면, 이것은 오로지 그들이 사실을 제대로 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사실을 직시하기에는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휴대 전화기를 거만하게 꼬나잡고 끊임없이 소리치면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점심 약속을 잡거나 주식을 거래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이 챙기는 이윤은, 보이지도 않고 냄새 나지도 않고 신경쓸 것도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구상 어딘가에서 굶주려 쓰러져 썩어가고 있는 어린이의 부패한 시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작은 아이히만이라는 혐의 말고 다른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돌프 아이히만: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로서, 유태인 학살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정부의 비난과는 달리) WTC 와 펜타곤 공격을 수행한 사람들은 '비겁자' 들이 아니다. 비겁자라는 말은, 무방비 상태인 바드다드의 하늘로 신나게 스텔스기를 몰고 나가, 재수없게 바로 그 밑에 있게 됐다는 것 말고는 글자 그대로 아무런 잘못 없는 수만 명의 민간인 머리 위로 폭탄을 쏟고 또 쏟아붓는 무뢰한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이 무뢰한들이 감수하는 위험 부담이란 집 앞의 비디오 가게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빌려올 때의 위험보다 크지 않다. 또한 비겁자라는 말은, 페르시아 만에 떠 있는 군함 위의 컴퓨터실 안에 앉아서 시원한 냉방 장치의 바람을 즐기며,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할 크루즈 미사일의 발사 단추를 누르는 이른바 ‘전투 용사’ 들에게나 어울릴 말이다. 9-11 공격을 수행한 전투원들은 비겁자이기는커녕, 목표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바침으로써 신념에서 나온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이들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들은 이슬람 원리주의에 경도된 광신자들도 아니다.

그들의 행동을 '절망적' 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기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 세상 누구 하나 신경도 쓰지 않는 지경에 처한 사람이 갖는 절망감은 완전히 이성적인 정서 반응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정상적' 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채 학살 당할 때의 느낌이 궁금하다면, 나치 학살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아무에게 물어보거나 혹은 집시 한 명을 붙잡고 물어보라.

이러한 절망적 상황이 절망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전혀 신비하지도 비이성적이지도 않은 당연한 일일 뿐, 광신적 믿음으로 만들어진 동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심지어, 9-11 전투원들이 공격 직전까지 몇 달 동안 벌인 행적을 조사한 FBI 의 보고서조차 이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아니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들은 분명한 비종교 활동가들이었으며, 다른 말로 하자면 '군인' 들이다. 이들이 자기 나라의 종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들에게 동기를 준 것은 일단의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미국의 공격으로 자기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또 그들의 행동은 미치광이 짓도 아니다.

광기나 미치광이란, 자기들은 대량 학살을 저지를 수 있는 절대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따라서 실제로 그렇게 하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미국식 사고방식 같은 걸 묘사하는 데 쓰이는 말이다. 미치광이란 말은 또 이러한 대량 학살을 중지시키려는 어떠한 실질적인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하는 자들 (즉 미국인 일반) 에 대해서도 붙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범죄자를 처단하고 그들의 범죄 행각의 원천이 되는 자원을 근절하려는 (9-11 공격팀의) 의식적인 노력은 오히려 광기의 반대말인 온전한 정신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2차 대전 때 전범 독일을 폭격했던 미국의 '전략적 폭격 작전' 을 상기해보자. 그 폭격에 가담했던 미군들이 모두 미치광이였던가?

대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9-11 공격 대원들이 '악의 화신' 이라고 간주하도록 만들었는가.

악의 화신이란 말은, 자기 사무실의 안락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서 이라크의 죄없는 어린이들에게 집단 사형 선고를 내리던, 흔히 매들린 올브라이트 (클린턴 시절 국무장관) 로 알려져 있는 사악한 두꺼비에게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말이다. 또 악이란 말은 미군의 체계적인 고문과 학살을 전쟁에 따르는 부수적인 희생이라고 비인간적으로 강변한 위대한 미국의 영웅 '폭풍 장군' 노만 슈와르츠코프 (걸프전 때 미군 사령관) 를 놓고 쓰여야 한다. 더 나아가, 악이란 말은 이러한 시각이나 주장, 그것을 초래하는 정책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일반인들의 정신을 묘사할 때에도 어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악의 화신들이 없었다면 9-11 이라는 반격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격팀이 아랍인의 외모를 지니고 있는 소수의 테러리스트로서 민간 항공기를 납치했기 때문에 악의 화신인가?) WTC 와 펜타곤을 공격한 팀이 공격 대원들의 전부라고 믿을 이유는 전혀 없으며, 다른 대원들이 모두 아랍 사람의 외모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믿을 이유도 전혀 없다. 또 이들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음에도 민간 항공기를 납치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도 전혀 없다.

그와는 반대로, 9-11 공격을 수행한 팀처럼 잘 훈련되고 준비된 또다른 많은 공격 대원이 존재하며, 이들은 다양한 전술을 통해 다른 비슷한 작전 계획들을 세우고 집행해 나가려 준비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것은 다시 말해, WTC 와 펜타곤에 대한 공격이 '테러 사건' 이 아니라 분명한 전쟁 행위이고, 따라서 어떤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립된 광범위한 전략 중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또다른 수많은 공격 작전들이 준비되어 있고, 이들은 전략 지휘관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수행되도록 예비되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각각의 공격은 그 전의 공격보다 한층 더 큰 해를 입히도록 치밀하게 단계적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60년대에 미국 존슨 행정부는 베트남에 대해 이와 비슷한 정책인 '단계적 확전' 작전을 취한 바 있다.

이러한 대규모 전략이 WTC 와 펜타곤에 대한 공격을 필두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만일 미국이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려 한다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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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풀.넷 : 빈 라덴의 사살과 미국적 한국인들 2014-03-16 14:18:23 #

    ... 라덴' 같은 말을 쉽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9/11 공격을 당한 것이 자업자득이라고 주장하며 미국 사회를 거침없이 비난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던 비주류 미국인 와드 처칠의 말을 잠깐 들어 보자. 2001년 9월11일 오전, 그동안 미국이 뿌린 씨앗들이, 50만에 이르는 이라크 어린이들의 죽음의 저주와 함께,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 ... more

  • 들풀.넷 : 이스라엘의 공격을 불러온 병사 납치? 2014-03-28 00:20:05 #

    ...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전혀 신비하지도 비이성적이지도 않은 당연한 일일 뿐, 광신적 믿음으로 만들어진 동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 와드 처칠, <누군가는 반격한다: 보복의 정의에 대해서>   ... more

덧글

  • corwin 2005/03/22 19:26 # 답글

    이런 글이 이오공감이 되어야 하는데...
  • mooni 2005/03/23 00:28 # 답글

    누군가에게는 위험한 글이겠죠... -_-;;
    편의상 1번째 글만 트랙백을 걸겠습니다.
  • deulpul 2005/03/24 16:55 # 답글

    corwin: '일부공감' 이 있다면 올라갔을 거에요... 하하-.

    mooni: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난리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 이므 2005/06/28 16:18 # 답글

    과연 나는 저 비판에서 자유로운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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